2022년의 전반전을 잘 치르고 후반전이 시작된 7월 첫날,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보러 갔습니다. 처음이에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두 번씩이나 보고 싶었던 적은.

<헤어질 결심> 개봉을 기다린 까닭은 순전히 탕웨이 주연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중국 영화가 아니니 그녀의 매력적인 보이스로 흘러나오는 중국어는 못 듣겠지만 그래도 탕웨이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데 놓칠 수 없었죠. 그런데 좋았어요, 넘~흐~. 영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 기대를 저버리고(?!) 중국어를 ‘남발’하는 탕웨이, 아니 '서래'. 무척 의심스럽지만 그녀 얼굴을 보면 그저 안타깝기만 했죠. 

그녀 탓에 경찰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붕괴’되었다는 담당 형사 해준에게 그녀 사건 역시 미결 사건이 되어 그가 그녀의 사진으로 벽을 도배하고 오로지 그녀 생각만 했으면 좋겠다며 서래는 차 안에서 혼자 울먹입니다.

   你的爱结束，我的爱就开始了。“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순간,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어요!”

제게 좋은 영화란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하늘색 롱코트에 보라빛 원피스를 입은 서래의 바로 저 애달픈 사랑 고백과 함께 영화 <헤어질 결심>은 ‘마침내’ 내 최애 영화 리스트에 사뿐히 올랐고, 나는 사흘 만에 부랴부랴 다시 영화관을 찾았답니다.

서래의 표현대로 현대인 치고 품위 있는 형사 해준은 암벽에서 추락사한 사내의 미망인으로 서래를 처음 만나요. 서래는 죽은 남편을 보고도 울기는커녕, 한국말이 자신이 없을 때는 자꾸 웃게 된다면서, 배시시 웃죠. 그랬던 서래의 두 번째 남편마저 해준의 관할 지역에서 피살 당하고 13개월 만에 서래가 또다시 용의자 선상에 오르자, 해준은 서래를 처음 만났을 당시 그 꿀 떨어지던 눈빛 대신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매몰차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사납게 다그칩니다. 

다음 남편을 죽일 때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면서 그녀에게 으름장을 놓던, 찰떡 콤비 후배 형사가 계속 딴지 걸면서 사건 해결을 종용할 때조차 점잖게 그녀를 옹호하고,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잉크처럼 스며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 悲伤对有的人来说就像波涛汹涌，对有的人来说就像墨水晕染。“

밤마다 그녀의 아파트 주변에서 잠복근무하는 것조차 그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을 지켜주는 안정감을 주던,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를 왜 좋아하는지 술술 말해주던 그런 해준이었는데······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고도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婷婷玉立。不紧张、放松的时候也那么端庄的人很少。”

꼿꼿하다. 이 말은 혹시 서래라는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탕웨이에 대한 느낌이 아닐까. 왜냐구요? 내가 그랬거든요! 어떤 영화에서든 탕웨이를 볼 때마다 나 역시 그렇게 느꼈거든요. '차~암 꼿꼿해!' 그런 까닭에 영화 보다가 그만 혼자 무릎을 탁! 치며 씨~익 웃고 말았답니다. 남편 살해 피의자인 서래는(아니면 탕웨이는) 의자에 앉을 때도, 소파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아 발가락만 꼼지락 댈 때도, 경찰에게 조사를 받을 때도, 서성일 때조차도 꼿꼿해요. 그 형용사를 선택한 감독에게 존경의 박수를~!🤗 

멀대처럼 큰 키에 시골티 폴폴 내며 항상 주눅들어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 흐느적거리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들 기세를 보이던 나는 지금은 통 모습을 볼 수 없는 모델 김동수님을 TV에서 보고,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의 저자 조안리님이나 현대무용가 홍신자님을 지면으로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어요. 바른 자세에서 나오는 당당함, 가슴이 저리도록 부럽고 닮고 싶었죠.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음, 전보다 많이 ‘뻣뻣’해지기는 했어요. 아니, 딱딱해졌나?

그 외에도 <헤어질 결심>은 캐릭터들의 대사를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에요. 영화 보는 내내 혼자 키득키득. 그러니까, 번역가로 자리를 굳히고 싶어 평소 단어나 표현 줍기가 취미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본능적으로 끌릴 수 밖에 없는 영화였던 셈인 거죠.

자신이 중국인이라 한국말이 마~늬 부족하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 서래는 시작부터 영화의 복선이 될 만한 대사들을 수준급의 한국어로 내뱉는데, 다급한 상황이거나 진솔한 속내를 드러낼 때는 표준 중국어를 유창하게 ‘남발’해요. 그때마다 탕웨이의 중국어를 은근히 기대했던 나는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지 않겠어요? ㅎㅎㅎ.

게다가, 자신에게 끌린 게 분명한 눈빛의 해준에게 서래가 새초롬하게 휴대폰 통역 어플로 말을 걸기도 하는데, 그때 탕웨이 목소리 위에 얹혀지는 우아한 한국어 더빙이 기계음 대신 내가 좋아하는 성우 김상현님의 매력적인 저음으로 흘러나올 때는 그 감동이 배가 되었고, 더할 나위 없이 흐뭇했답니다. 한국인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그리던 헐리웃 영화처럼, 그동안 중국인, 중국어는 K-무비에서 다소 어둡고 부정적으로 그려졌던 게 사실이었으니까요.

영화 보다가 갑자기 혼자 💦급한 순간도 있었어요.🤭 서래가 남편과 통화하는 중에 자신들에게 사기 당한 이들이 자신들을 옥죄어 온다며 큰소리로 남편을 다그칩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두 번째 남편, 호산이 넉살스레 둘러대죠. “우리 사이 괜찮지? 사랑해~” 그 물음에 서래는 “사이? 사이는 됐고 이사나 가자!” 로 응수하는 장면이었어요.

그 순간 스크린 밖 관객석의 미숙둥절은? 

‘웃어! 웃어도 돼! 왜 웃지를 못 해!’ 웃어야 하는데, 웃지도 못하고 ㅋㅋㅋ 갑자기 뭐 마려운 🐶 처럼  ‘앗! 저걸 어떻게?!’ 사이? 이사? 이거 분명 아재개그인데 어쩌지? 어쩐다?

“我们的关系还行吧？“

“什么关系就算了，反正这里不行了！“

“우리 사이 괜찮지?”

“사이? 사이는 됐고, 이사나 가자!”

엄마를 간호하려 간호사가 되었다가 외려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고 살인자가 된 서래와 잠이 부족해 잠복하는지 잠복해서 잠이 부족한지 모를, 늘 눈이 뻑뻑한 해준의 멜로 영화인가 싶다가도 해준의 단짝 동료 수완(고경표)과 개그콘서트의 김신영을 훌쩍 뛰어넘는 개그를 선보이는 연수(김신영)의 감초 코믹 연기도 적재적소에서 과하지 않게 뽱~ 뽱~ 터지는 영화. 그런가 하면, 서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단일한’ 중국 요리를 맛나게 요리하던 해준이 개미가 사람 시체를 먹냐는 서래의 섬뜩한 질문에 건조한 톤으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장면이나, 박정민(산호)과 박용우(호신) 등 심상치 않은 조연들을 통해 보여주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섬뜩한 스릴러의 맛이 녹아있는 영화. 한마디로 영화 보는 두 시간 남짓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 놓치지 말고 꼭 한번 보시길. 아니! 이미 보신 분들, 모두 여기 여기 모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