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어제 삼일절에는 무얼 하셨나요? 일주일 한가운데 붉은 숫자가 마치 하트 뿅뿅 하는 듯한 수요일의 공휴일, 휴식의 꿀맛을 즐기셨든, 근무 스케줄 대로 열 일 하셨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게’ 해주신 독립투사들께 감사하며 미숙둥절도 님도 매년 쉼표 찍고 3월에 들어서네요.  

요즘엔 왜 이렇게 피곤한지, 아니 피곤한 건 누구나 그러니까 뭐 대수롭다고 볼 수 없으니∙∙∙∙∙∙ 아무튼 화요일 저녁에도 둥절이는 느닷없이 레드 썬! 쏟아지는 잠에 대책 없이 빠져들었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 감탄하며 만보 걷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른 저녁에 그대로 화요일 하루를 마감했네요.

몇 번이고 설핏 눈이 떠졌지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지는 못했고 결국 몸을 일으켜 이부자리를 말끔히 정리한 때는 오늘 그러니까 삼일절 아침 6시 즈음.

미지근한 물을 한 컵 홀짝이며 귀한 공휴일 하루를 어떻게 놀까 궁리합니다. 그때 라디오 DJ 이야기가 떠올라, 희뿌연 창 밖을 내다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어요.

그는 혼자서 영화 보기가 꽤 괜찮은 이유를 이야기했죠.

누군가와 시간을 맞출 필요 없고, 나의 취향을 다른 사람과 타협할 필요도 없고, 슬픈 영화라면 눈치 보지 않고 펑펑 울 수도 있고, 공포 영화라면 혼자라는 이유로 훨씬 공포스러울 수 있다고요.

그의 이야기 끝에 둥절이는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영화는 원래 혼자 보는 거 아냐? 🤣 그만큼 그의 이야기에 크게 깊게 공감한다는 뜻이었죠.

친구나 가족, 연인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 영화 감상은 아주 좋은 선택지입니다. 게다가 요즘 멀티플렉스 상영관엔 영화도 장르에 따라 참 다양하잖아요.

그런데 동행하는 이와 무슨 영화를 볼까 순조롭게 결정한다면 모를까 서로 의견이 갈라지면? 그러다가 결국 보고 싶었던 영화가 아닌 영화를 봐야만 한다면? 뭘 보면 어때 하는 심정으로 금방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좋겠죠.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그날의 영화를 즐기기란 쉽지 않게 되죠.

그래서 여러 사람과 영화를 같이 봐야 할 경우라면 둥절이는 오래전부터 ‘헤쳐 모여’를 선호합니다. 각자 보고 싶은 영화 보고 다시 만나는 거죠. 두 영화의 상영시간이 얼토당토않게 배정되었다면 어쩔 수 없죠. 설왕설래, 가위바위보, 등등 갖은 방법으로 상대를 꼬셔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거나 아예 영화 관람 말고 다른 오락거리를 찾는 거죠.

그런데 처음부터 무슨 영화를 언제 볼까 혼자 결정하면 그렇게 가슴이 설렐 수가 없어요.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의 영화, 주제가 끌리는 영화, 간혹 무턱대고 이건 무슨 영화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혹은 포스터가 왠지 끌려서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하는 순간 달콤한 기다림이 시작되죠.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애써 영화에 관한 정보를 뒤지는 일도 삼가며 기분 좋은 기다림을 즐겨요. 마시고 싶은 음료를 하나 골라 상영관, 예매 좌석에 착석하면 그 기다림이 최고조에 달하죠. 생각해 보니, 누군가와 같이 영화를 보면 좌석을 고르는 일도 문제가 될 수 있겠네요. 뒷줄? 앞줄? 가운데 스크린을 기준으로 왼쪽 아니면 오른쪽?  

둥절이가 영화를 보게 만든 영화, 허진호 감독님의 <봄날은 간다>입니다. 우연히 극장에 들어갔다가 영화가 너무 좋아서 저녁에 같은 영화를 다시 보러 갔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며칠에 걸쳐 친구, 아는 언니, 막내 올케와 함께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봤어요. 영화 말미에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그 화사한 벚꽃 아래서 상우(유지태)가 은수(이영애)에게 손을 들어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벚꽃 엔딩 장면에서는 매번 눈물이 났구요.

물론 그전에도 영화를 가끔 보았지만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었어요. 외려 그 어둡고 습한, 꿉꿉한 냄새가 가득한 공간을 즐기지 못하는 편에 속했죠.

그러다 <봄날은 간다>를 기점으로 영화 본다는 의미가 극적으로 변했어요. 아, 한편의 영화가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구나. 

그때부터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친구와 뭐 할까 생각하다 우리 그냥 영화나 볼까 하던 때와 달리 이젠 누군가와 시간 약속을 잡고, 같이 볼 영화를 고르고 하는 게 살짝 번거로워졌어요. 아, 아닌데. 나는 지금 당장 보고 싶은데 혹은 저녁 시간이 좋은데, 한국 영화가 좋은데, 오락 영화는 별로인데. 까다롭게 굴고 싶지 않은데 까다롭게 굴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혼자 갔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대부분 혼자 즐기는 취미가 되었죠. 완벽한 힐링의 시간으로 말이지요.

둥절이가 사는 동네에 낡은 영화관이 두 곳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이 몇 해전에 시골 작은 영화관으로 탈바꿈을 했답니다. 주민이 워낙 적다 보니 영화 관객도 매우 적습니다. 주말을 피해 평일에, 그것도 이른 시간에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면 마치 영화관을 대관이라도 한 것처럼 나 혼자 오롯이 영화에 푹 빠져서 두 시간 동안 완전히 다른 세상에 다녀올 수 있죠.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취향을 타협하지 않아도 좋다, 조금 전 라디오 DJ 말처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만은 양보 못 해, 포기할 수 없어 하는 게 취향이라는 것이잖아요.

커피는 ‘얼죽아’라든지, 맥주는 카스, 소주는 참이슬, 붕어빵은 꼬리부터, 라면은 꼬들꼬들, 계란 프라이는 반숙, 우유는 초코우유, 짜장보다는 짬뽕, 산보다는 바다, 겨울보다 여름, 휴대폰은 아이폰, 드라마는 방구석1열 본방 사수, 김밥은 꼬다리부터, 지하철보다는 버스, 또 뭐가 있을까요? 님은 뭐가 떠오르시나요? 절대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어! 양보하기 싫어! 하는 것 뭐가 있으세요? 앗? 둥절이가 ‘얼죽아’냐고요? 아닙니다. 예시는 예시일 뿐 😁😂

다 함께 사는 세상에 양보가 미덕일 수 있지만 일상에서의 취향이란 어쩌면 고된 일상을 버티는원동력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러니 옆 사람도 나만큼 기분 상하지 않는 선에서 맘껏 내 취향을 고집하며 기쁘게 하루를 살자구요.

그래서, 삼일절에 뭐하고 놀까 고민하던 둥절이는 혼자 영화관에 갔을까요? 아닙니다 😄 그마저도 하지 않고, 다른 아무 것도 안 하면서 하루를 집콕하면서 뒹굴대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문화해설사로 일하시는, 언니라고 부르기에 죄송스러운 오랜 인연을 찾아가 백제계 석탑 양식을 충실히 모방했다는 고려 시대 석탑, ‘서천 성북리 5층 석탑’ 얘기도 듣고, 나비도 만나고, 즐겁게 점심도 같이 먹었습니다.  

서예 연습하다 좌절하고, 서각에 둥절이 호를 새겨 넣으며 한 작품 마무리하고, 평일에는 너무 어두운 새벽이라 오르지 못하던 뒷동산에 오후 시간을 이용해 다녀오면서 만보 걷기도 완수했습니다.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멀리 있는 친구들과는 카톡으로 전화로 수다를 떨면서 짧아서 아쉽기만 한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실컷 낮잠 자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군요. 그렇다면 낮잠은 다음 어느 날에!!

월요일 같은 목요일, 3월 2일에는 뭐가 님과 둥절이를 기다릴까요?

바람은 여전히 쌀쌀맞을까, 그래서 누군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슬며시 내게 건넬까, 아무리 그래도 봄은 오니까 화사한 색깔의 스카프로 봄 기분을 좀 내볼까. 잠깐의 상상만으로 기분 좋은 하루를 예감합니다. 님도 또 한 번의 멋진 하루를 님의 취향 만끽하며 보내시기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