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데 왼쪽 발목에 찌르르 통증이 일었습니다. 그때부터 왼발을 질질 끌기 시작했습니다. 인대가 늘어난 모양이었습니다. 갑자기! 뭘 어쩌다 왜 그런지도 전혀 알지 못한 채 발목 통증은 저 혼자 심각해져 갔어요. 발을 바닥에 내려놓아도, 발목을 살짝만 틀어도, 발가락을 까딱만 해도 아팠죠.

당황, 아니 황당했어요.

부슬부슬 봄비를 맞으며 이른 아침부터 두 시간 정도 걷고 온 터라 더욱 그랬어요. 내내 쌩쌩하다가 이게 무슨😡

비 내리는 일요일, 낮잠 자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날이죠. 어쩌다 보니 실컷 낮잠 잤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더라구요. 딱히 큰일을 하는 것도,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올해는 꼭, 비 오는 날 쿨쿨 낮잠을 자야겠다 아니 자고 싶다 ‘연중 계획’까지 세웠어요. 그렇지만 이건 아니죠. 발목 통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은 하루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쿨쿨 낮잠 자는 게 정답이겠지만, 둥절이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낮잠은 절대 이런 낮잠이 아니잖아요?!  

한 마리가 우아하게 호수를 가로지르는가 싶었는데 휴대폰을 꺼내는 사이 다른 한 마리가 나타났더라구요

그런데 찰칵, 둥절이가 사진을 찍은 직후에 둘이서 쏙~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답니다, 감쪽같이.

엄마를 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픈 것은 둘째치고 짜증이 먼저 났어요.(임티) 곧장 서각 수업 갔다가 마트에 들러 새우랑 오징어를 사서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묵은 김치에 청양고추만 넣고 김치전을 한 장 부쳐 먹고 나갔던 참이거든요. 저녁에는 제대로 부쳐 먹자 싶었는데. 서각도, 서예도, 책 읽기도, 김치전에 곁들일 와인 한 잔도 모두 땡! 땡! 안 돼! 안 해! 못 해!

조금 전에 말한 짜증은 불운한 휴일이 또 시작인가 싶어서였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는 것처럼 둥절이에게는 ‘고장 났다 하면 일요일’이라는 징크스가 있어요. 잘 되던 노트북이 먹통이 되는 것도, 추운 겨울날 연통에서 꾸릉꾸릉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보일러가 작동을 멈춰 집이 온통 냉골이 된 것도, 잘 나오던 TV 화면이 까맣게 되어 볼 수 없게 되는 것도,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을 정도가 된 것도 모두 일요일이었어요. 모두가 달콤한 휴식에 들어간 일요일. 어디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 애써볼 수도 없는, 그저 다음날 평일의 정상 상태가 되기 전까지 덩그러니 혼자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잊을 만하면 다시 일어나죠. 이번 ‘비요일’ 느닷없이 인대가 늘어난 발목처럼.

다행히 오른발이 아픈 건 아니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왼발을 질질 끌면서 차에 올라 운전하는 동안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머리가 멍~ 하니 그냥 자고만 싶었어요. 집에 파스가 있던가, 있겠지. 없어도 뭐 어떻게 해. 오늘은 약국이 모두 문 닫았는데. 문 연 약국을 찾으면 없지는 않았을 텐데 무작정 집으로 차를 몰았어요. 그런데 집에는 파스가 없었고, 통증은 갈수록 심해져 걱정스러울 정도가 되었죠. 아무튼 누웠어요. 눈까풀이 무거울 정도로 졸렸거든요. 왼발은 겉보기에 암씨롱 안 하고 멀쩡하지만 마치 팽팽한 풍선이 된 느낌이었죠. 바닥에 닿기만 해도 쩌릿쩌릿 아플 지경이었어요. 어정쩡한 자세로 누웠는데 잠이 들기는커녕 신경이 온통 아픈 발목으로 쏠려서 간신히 가라앉힌 짜증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일어났죠.  

아! 편의점! 거기 파스가 있을지도? 몽롱하던 정신에 갑자기 스파크가 일어난 듯했죠. 그런데 자신할 수가 없었어요. 편의점에 파스가 있...던가… 이젠 장딴지까지 아픈 것만 같은데 바로 나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올 자신은 더더욱 없고. 그래서 카페를 하는 H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카페 앞에 편의점이 있었거든요. 여차하면 바로 나가서 확인해 줄 수 있겠다 싶어서요.

👩‍⚖️ 팔죠~ 팔아요, 언니!

👩‍💻 응, 그래. 고마워~!

그제야 마음 편히 잠깐 졸았어요.

잠에서 깬 다음에도 바로 편의점으로 가지 않았어요. 아니 못 갔어요. 나갈 엄두가 안 났거든요. 수건으로 찜질부터 해야겠다 싶더라구요. 편의점은 24시간이니 급할 거 없으니까. 그때 H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어요. 언니, 파스 샀어요? 카페에 필요한 게 있어서 잠시 마트에 들렀는데 마트 맞은편에 약국이 문을 열었다면서 안 그래도 팔목이 아팠는데 사는 김에 같이 사겠다고요. 바쁜 카페지기 H에게 미안한 마음과는 달리 내가 직접 가도 된다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어요. 두어 시간 후에 H가 파스를 들고 왔습니다. 근육 이완제까지 사 들고 말이죠. 익숙한 팝송이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어요 You are an angel from above.  

중국어에 掉链子 [diàoliànzi]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고장이 나다’,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다’ 라는 뜻인데, 님, 자전거 타시나요? 생뚱맞게 갑자기 웬 자전거 얘기냐구요? 앞에서 말한 중국어 표현에 链子[liànzi]가 바로 자전거 체인을 말하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掉链子를 직역하면 ‘체인이 빠지다’라는 말이 되죠. 무슨 일이 잘 되어 가다가 중간에 뚝, 뭔가 척척 잘 된다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툭, 그때부터 일이 꼬이면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묘사하는 표현인 거죠. 처음 접하는 순간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참 절묘한 표현이다 싶어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공기를 가르고 가는데 갑자기 체인이 빠지면서 헛바퀴가 돌 때의 기분, 님도 아시지 않을까 싶어서 불쑥 자전거 타실 줄 아는지 물었던 거랍니다. 지난 일요일 둥절이의 기분이 딱 그랬거든요. 머피의 법칙인가?? 봄비 맞고 몽글몽글해진 마음이 순식간에 얼음처럼 딱딱하게 차가워지면서 신경질만 북북. 물론, 그 얼음은 쉽사리 녹아 없어졌죠. 할 일이 산더미로 쌓인 상황도 아니고, 천사처럼 나타난 H덕분에 파스 붙이고 약 먹고 다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자정쯤에는 거짓말처럼 말짱해져서 되레 어이없고 살짝 서운해질 정도였으니까요. 아~~ 환자놀이 더 해야 하는데~~ 🤣

살다 보면 이렇게 평온하던 일상이 뜬금없이 삐끗하는 날이 있죠. 대수롭지 않은 상비약이면 금방 해결될 수도 있지만 어처구니없게 그 상비약이 상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일 때 웃지만 웃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처럼 울 수는 없고. 그런 날, 님께도 H같은 천사가 나타나기를, 그런 상황에 빠진 그 어떤 ‘둥절이’에게 님이 그런 천사가 되어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