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화요일 아침, 느긋하게 출근했는데 막상 회사에 도착하니 그다지 여유롭지는 않았어요. 부랴부랴 출근 카드를 찍는데 뒤에서 직원 한 명이 말을 걸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던 탓에 말끝이 느낌표였는지 물음표였는지 분간하기 살짝 애매하지만 아무튼 웬만하면 엘리베이터를 사뿐히 무시하고 그 옆쪽 계단으로 종종걸음 치는 둥절이를 볼 때마다 씽긋 웃던 직원의 아침 인사였습니다.

"그럼요!”

라는 말로 아침 인사를 대신하고 계단을 오르며 둥절이의 하루 업무가 시작되었죠.

걷기, 하루 만 보 걷기. 삼시 세끼는커녕 하루 한 끼도 대충 챙기는 둥절이가 요즘,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2022년에 매일 꼬박꼬박 챙겨 가며 열심을 부렸고 앞으로도 열심을 부리고 싶은 일상입니다.

님은 생활하면서 많이 걸으세요? 둥절이처럼 하루 만 보 걷기 하시나요? 캐시워크 같은 휴대폰 앱을 쓰면 하루 걸음 수만큼 캐시로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차곡차곡 쌓이고, 부지런히 SNS에 인증하면 선물🎁도 주고 참, 재미있는 세상 놀이죠?! 아, 그런데 SNS 인증을 꼬박꼬박 챙기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던걸요? 오히려 걷기가 더 쉬어요 😆 귀차니즘에 빠진 둥절이는 시크한 척 노 땡큐~ 카카오톡 만보 걷기 커뮤니티 방에만 꼬박꼬박 인증하면서 즐기고 있어요. 

사실 둥절이는 단단한 근육질 몸매……와는 완전 동떨어진 그냥 단단한 나무토막 몸매로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걸으면서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낸답니다. 늘 벼르기만 하다가 필라테스에 도전했지만 2주만에 포기했어요. 휴대폰 앱을 이용해서 집에서 혼자 하는 홈트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랬던 둥절이가 걷기에만 자그마치 하루 두 시간을 할애하게 된 건 우연히 눈에 띈 한 줄의 카톡 메시지 덕분이었습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같이 걷자’고 제안했고, 그 제안에 누군가 따로 만보 걷기 오픈카톡방을 만들었고, 둥절이는 카톡방으로 냉큼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거의 매일 1만보씩 걸었습니다. 할까 말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피곤할 정도로 걸었어요. 오랜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땅바닥이 후두두둑 쏟아지는 소나기를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몽땅 빨아들이듯, 생활 걸음이 1천보에도 못 미칠 정도로 책상에 ‘딱붙’한 채 지냈던 터라 몸이 본능적으로 알아챘던 거죠. 지금 간절히 필요한 게 무엇인지요.

 qiān lǐ zhī xíng, shǐ yú zú xi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한 구절로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고 사소한 것이 쌓여 큰 성과를 이룬다는 비유로 무척 익숙한 문장이구요,

千里之堤， 溃于蚁穴

qiān lǐ zhī dī, kuì yú yǐ xué

천 리 제방도 개미 구멍 하나로 무너진다

조그만 일이라고 무시하다가 결국 큰 문제가 발생함을 경고하는 문장입니다.

1월 1일이 12월 31과 다른 것은 우리들의 사회적 문화적 통념일 뿐, 사실은 어제와 별다를 바 없이 평범한 하루가 열린 거죠. 똑 같은 하루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색다른 축제로 만드는 우리. 굳이 1월 1일이 아니면 뭐 어때요. 어느 날 문득 새로이 뭔가 시작하는 이의 용기 있는 첫 걸음에 박수 갈채를, 그리고 그 위에 작은 개미 구멍 놓치지 말고 가 닿고자 하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응원의 마음을 얹어봅니다.

출근하기 바쁜데, 퇴근해서 현관문 닫으면 아파트 슈퍼마켓에도 나가기 싫다고요?

그래도 나가서 걷죠. 게으름이라는 녀석, 귀차니즘이라는 녀석에게 지는 게 더 싫으니까.

다이어트가 새해 목표인가요?

그렇다면 어서 나가서 걸으세요. 둥절이는 올해 걷기만으로 3kg이상 뺐어요, 아니 빠졌어요, 저절로. 진짜에요!!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으세요?

그러니까 나가서 걷자구요. 함께 걷기를 제안하고, 오픈단톡방을 열어주었던 고맙기 그지없는 그 “누군가”들과 둥절이는 인친을 넘어 현친이 되었거든요.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었고, 앞으로도 더더욱 진솔한 친구가 될 거니까요, 아니 되려고 서로 정성을 다할 거니까요.

괜스레 슬프고 우울하세요?

그렇더라도 나가서 걸어 보세요. 아무리 내 속내를 보여 줘도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더 외롭고 더 힘들잖아요. 걸으면서 바람에게 얘기 하세요. 구름에게 얘기하고, 돌부리라도 걷어차 보세요. 어랏? 애먼 돌에게 미안한 건가? 크게 소리도 쳐보고, 하루에 다 안 풀리면 풀릴 때까지 걷고 또 걸어보자구요.

반대로, 기분 좋은 일이 있으세요?

그러면 걸읍시다. 갑자기? ㅎㅎ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들 하지만, 둥절이는 그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솔직하게 내보인 슬픔은 외려 약점이 되어 둥절이를 더 괴롭혔고, 맘껏 발산한 기쁨은 시기와 질투로 되돌아 왔고요. 물론, 늘 그렇기만 하겠어요?! 나보다 먼저 호들갑 떨면서 나 대신 기뻐해주는 친구가 있고, 내 슬픔을 먼저 눈치챈 이가 건네는 은근한 위로에는 가슴이 먹먹하죠. 아무튼 환한 미소를 머금고 유쾌하게 거리를 활보하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의 긍정 에너지를 발산하자고요. 좋겠죠? 멋지겠죠?

그러므로 님, 오늘 둥절이와 같이 걸어요.

이게 무슨 뜬금포 데이트 신청? 둥절이가 또 둥절이 하나요? ㅎㅎ

꼭 눈 앞에 있어야 ‘같이’인 것은 아니잖아요.

님은 님이 계신 곳에서, 둥절이는 장항에서 걷는 거예요.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면서,

없으면 없는 대로 걷고 싶을 때까지 걸어요.

어떤 기분일지 사뭇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