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좋아하시나요? 둥절이는 그렇답니다. 취향에 맞는 드라마를 만나면 그보다 좋은 휴식 시간이 없더라구요. 뭘 해도 돈이 드는 요즘에 경제적인 부담 느낄 필요 없는 휴식 시간이고, 내 맘대로 짜깁기하면서 감정 과잉 상태로 흠뻑 취해서 나의 현실에서 살짝 벗어날 수도 있구요. 때로는 타인의 인생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면서 깊은 사색에 잠길 수도 있으니까요. 모르는 사람과 함께하는 유쾌한 티타임이랄까요? 헛! 이쯤 하면 조금 지나친 과대포장인가 싶은데요? 😄😃😆아무튼 둥절이는 좋아요, 느긋하게 뒹굴뒹굴 드라마 보는 시간이.

설 연휴에 무심코 TV를 켰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드라마 속 장면에 이끌려 한 회를 끝까지 보고 본방이 언제인지 따로 체크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Jtbc 주말드라마 <대행사>, 광고 대행사를 둘러싼 오피스 드라마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딱풀 바른 종잇장처럼 둥절이를 그 자리에 바로 엉덩이 깔고 앉게 만든 장면도 솔직히 별게 아니었어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어쩌면 오늘 아침 님도 보셨거나, 님이 몸소 겪었을지도 모를 도시 직장인의 출근 장면이었어요.

VC기획에 근무하는 카피라이터 조은정. 어제 그녀는 사직서를 제출하러 상사에게 갔다가 되레 팀장으로 승진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들고 갔던 사직서를 부~욱, 북 찢어서 버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죠. 둥절이를 홀린 장면은 이튿날 그녀가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마구 달리는 부분이었어요. 부서지는 아침 햇살 사이를 긴 원피스 자락을 나풀거리며 가로지르는 그녀를 보는데 아침마다 출근 전쟁을 치르는 친구 Y가 떠올랐고, 몇 해 전에 새벽 혹은 늦은 밤, 만원 지하철 안에 있었던 둥절이의 모습이 오버랩 됐습니다. Y가 가끔 보내오는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도 연상되었어요. 말 그대로 참치 캔 속같이 차곡차곡 ‘낑겨’ 있는 사람들 모습을 참 실감나게 그린 것들요.

헐레벌떡 뛰어 버스에 오르더니 가방에서 낚시 의자를 꺼내 이미 착석한 손님들 앞에 앉아서는 자신이 어떻게 승진했는지 그 무용담을 쏟아내는 그녀를 지켜보던 둥절이를 감싼 건 향수였던 거 같아요. 도시에서 살았던 한 시절에 대한 향수. 봄 들판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조금은 나른하고 어렴풋한 감정의 잔물결, 그리움. 그런데 그 시기가 꽤 오래전입니다. 서른이 되기 전이었으니까요. 어? 서른이 꽤 오래전이라고? 쩝! 이 느닷없는 현타는? 😂🤣

그 무렵, 지하철로 출퇴근하던 둥절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노점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사무직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일하는 게 좀 따분했죠. 당시 둥절이가 지하철을 타던 역 주변에 즐비한 포장마차는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달래주는 쏘~주를 파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그곳 한 귀퉁이에서 새벽마다 토스트를 팔고 싶다고 같이 살던 언니에게 노래를 불러댔답니다.

뭐든 맛있게 잘 먹으면서도 요리를 하는 데에는 젬병인지라 맛깔나는 반찬들로 입맛 도는 한상차림은 남 얘기입니다. 도무지 도전할 의욕이 생기지 않죠. 하지만 넓은 사각 프라이팬에 마가린을 두르고 뚝딱^^ 만들어 종이컵에 척! 넣어주는 길거리 토스트는 은근히 자신감이 생기고 도전 의지가 이글이글 불타오르지 뭐예요?!  

치지직 마가린을 팬에 두르고 빵을 가지런히 올려 굽고, 프라이팬 한쪽에는 달걀 프라이를 부치죠. 양배추와 당근, 양파를 가늘게 채 썰고, 톡,톡 계란 한 판을 깨서 힘차게 휘저어 섞은 야채 듬뿍한 프라이. 노릇노릇 잘 익은 빵에 프라이를 얹고 식성에 따라 설탕과 케첩을 뿌립니다. 마지막으로 두툼한 토스트를 한번 접어서 종이컵에 넣습니다. 크~암!! 군침이 절로 도는 그 토스트!! 그게 그렇게 매력적인 일로 보였어요.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갈 때 어김없이 머릿속을 채우는 바람은 어서 도착역에 도착해서 총총히 계단을 밟고 올라 지하철역을 빠져나가는 순간에 있었어요. 출구를 나와 지상으로 막 올라왔을 때, 아무리 안 좋은 날씨라고 해도 그날 그 순간의 공기 내음이 참 좋아요. 싱그럽기도, 매콤하기도, 달콤하기도, 매캐하기도, 아무튼 한 여름 대낮만 빼고 참 향긋하니까요. 때마침 출출한 배를 채우는 길거리 토스트, 그게 둥절이가 그리워하는 도시의 맛이랍니다. 한동안 동경해 마지않았던 미래에 대한 야릇한 향수까지 더해진 무척 감성적인 도시의 맛.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내려와 살면서 길거리 토스트 사업 구상은 접었습니다. 😆옷만 아니라 음식에도 TPO가 있는 게 확실하니까요. 토스트를 굽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푸른 아침, 지하철역 출구 포장마차에서 먹던 길거리 토스트의 맛은 흉내 낼 수 없잖아요. 대신, 노마드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꿈꾸었죠.

맞아요! 님이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커피차. 아메리카노 커피와 생과일주스를 팔면서 1톤 푸드 트럭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낭만 가득한 꿈이었죠. 둘 다 노점이니 녹록지 않은 현실에 1년도 아니 한 계절, 어쩜 한 달도 못 견디고 철없는 환상에 불과했음을 깨달아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가서, 둥절이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은 카피라이터 조은정, 싱글싱글 웃으며 직속 상사인 고아인 상무에게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넵니다. 또 야근할 게 뻔한데, 고되고 힘들 땐 단 게 최고라면서요.

고아인 상무, 7살부터 고모에게 눈칫밥 먹으며 자라다 보니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고, 감정 없는 기계처럼 일만 하느라 돈만 아는 돈시오패스, 성공에 미친 성공지상주의자의 오해와 오명을 안고 삽니다. 팀장에서 상무로 승진하지만, 그녀의 성공을 두고 모두들 회장 딸의 낙하산 인사를 무마하려는 트릭일 뿐이고 시한부 인사 조치일 뿐이라고 쑤군대죠.

그런데 저 장면에서 미숙둥절의 시선은 벽에 있는 액자로 향했습니다.

이끌든가

要么领导

yàome lǐngdǎo

따르든가

要么跟随

yàome fúcóng

비키든가

要么滚开

yàome gŭnkāi

하얀 종이에 까맣고 반듯반듯한 붓글씨. 군더더기 없이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 드라마를 중간부터 보았기에 놓친 부분이 적잖지만, 고아인은 자기 팀원을 이끌기 시작했고, 회사나 사회이 구태의연한 관습을 따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마지막 ‘비키든가’라는 말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앙숙에게 하는 말로 들렸구요. 물론, 그녀가 양보하고 물러설 수도 있으나 그런 억울한 엔딩의 드라마를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는 없을 테니, 얄미운 적들이 어떻게 ‘꺼지시는지’가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겠죠.

그런데 미숙둥절은 회사라는 단체에서 엉거주춤 따르다가 결국 비켜나고 빠져나오는 선택을 했었네요. 이끌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요. 대신, 혼자 어슬렁대는 재미를 누리고 싶었죠. 아직도 미숙한 채로 둥절둥절 샛길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직장은 그렇다고 해도 삶은 스스로 이끌고 있고, 맹목적으로 따라가거나 어이없이 비켜나지 않습니다. 참 다행이죠?!

님, 오늘도

멋지게 즐겁게 보내시길

미숙둥절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