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님을 위해 오늘은 시원하게 겨울 동화 같은 전설로 시작을 할까 해요. 

하늘도 얼고 땅도 얼어버린 북극에서

누군가 말을 하면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

어느 틈엔가 꽁꽁 얼어버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답니다

하는 수 없죠

얼음 눈송이가 되어버린 말들을

집으로 가져가

불에 쬐어 천천히 녹여가며 들어요

재미있······죠? 아니라구요? 그럼······ 썰렁~한가요? 넘나 썰렁해서 소~름이 돋았다면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 더위에 이른 아침 순간이나마 님이 시원했을 테니. 🤣 요즘 읽는 중국 수필 한 꼭지의 서두가 바로 저 짧은 문장이었어요. 작가는 낭만적인 전설이라면서 감성이 풍부한 남부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유래한 이야기인 것 같다고 했죠. 한 줄 전설로 시작한 짧은 서두를 읽고 나서 미숙둥절은 한참을 골똘한 생각에 잠긴 후에야 다음 문단으로 넘어갈 수 있었어요. 님은 어떠신지요?

우선, 번역하면서 우리나라 울릉도를 시작으로 중국으로 유럽으로 세계를 떠돌고 싶은 미숙둥절이니, 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하나, 고민했죠. 그 다음은 입에서 방금 나온 말이 눈송이가 되어 얼어붙는 북극은 어쩌면 진짜 전설로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걱정이 들었어요. 미숙둥절의 우려를 얼토당토않은 망상으로 치부하기에 요즘 날씨가 지나치게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하지만 걱정도 잠시, 엉뚱한 상상이 꼬리를 물었어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 바로 얼음 눈송이가 되다니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 아닌가요? 🤭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 호기심 빵빵한 얼굴로 집을 향해 내달리는 미숙둥절을 상상하니 하하하, 깔깔깔 웃음이 절로 터졌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불부터 찾겠죠? 그 다음 장면부터는 폭죽 터지듯 머릿속이 온통 난리였어요.

불…은 얼마나 큰 불일까? 활활 타나? 타닥타닥 모닥불인가? 아니면 방 한 쪽에 은은한 화롯불인가? 아! 상황에 따라 다르겠구나!! 방금 대화했던 상대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표정, 어떤 눈빛으로 말했는지······.

좋아하는 이와의 대화였다면 아무튼 화롯불을 찾을 겁니다.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환히 웃으며 했던 말이라면 한 마디씩 천천히 녹여가며 꼼꼼히 가슴에 새기려 들겠죠, 그러는 사이 미숙둥절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말을 하던 순간 그의 눈빛이 평소와 달리 사뭇 날카로웠거나 표정이 어둡고 무뚝뚝했다면 그 얼음 눈송이를 받쳐든 손이 바들바들 떨릴 거 같아요. 가슴도 두근거리고.

그런데 안 그래도 싫고 껄끄러운 사이였거나 그런 상황이라면? 모닥불로 후딱 대강의 내용만 알아듣고 말까요? 혹시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경우였다면, 아예 활활 타오르는 불에 휙~ 던지고 말까요? 아니, 옳지 않아요. 그렇다면 화롯불에 녹여 들으면서 반드시 복수한다고 다짐이라도······? 하여간 영화든 드라마든 잘 골라 봐야 한다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영~ 요상스러운 생각만 부축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아니, 그도 옳지 않아요.  

상대가 내게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같은 말도 달리 들린다는 게 사실이지만, 무슨 말이든 한 번은 경청할 필요가 있으니. 듣고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이 더 큰 어른, 더 나은 어른으로 성숙하는 기회라는 것 또한 삶의 진실이니까요.

화를 가득 담은 말은 녹을 때도 시끄럽고 불똥이 마구 튀지 않을까요? 옆 사람들이 다들 놀라 멀리 피해 달아나겠죠. 또 어렵사리 꺼낸 말들은 쉬이 녹지도 않을려나요? 화롯불로는 녹지 않아 애가 타고 바짝바짝 조바심이 나는데 그렇다고 확~ 한순간에 태워 버릴 수 없어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도 있죠. 달콤하고 향긋한 향이 나는 얼음 눈송이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말일수록 녹이기 아쉬울 테니 최대한 굼뜨게 녹여볼까요?

굳이 불에 녹여 확인하기 싫은 말도 있겠죠? 그의 눈빛이, 표정이 이미 모든 걸 다 말해주는 통에 넘나 좋아서 두고두고 간직해 두고 싶은 말도 있을 테고, 정반대로 들을 엄두가 안 나거나, 무슨 이유로든 들어볼 까닭이 없어서 솔직히 집에 가는 도중에 어디엔가 슬쩍 떨어뜨려 잃어버리고 싶은 말들도 있고, 실수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듣고 싶어도 못 듣는 말들도 나올 테죠?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이도 다를 듯해요. 춤을 추듯 나비처럼 폴폴 가벼울 수도, 발레리나처럼 아름다울 수도, 잰 걸음으로 다급하게 종종거릴 수도, 휘적휘적 허둥대며 내달릴 수도, 마지 못해 끌려가듯 신발까지 질질 끌며 꾸역꾸역 느릿느릿 걸을 수도. 

어제처럼 오늘 님도, 미숙둥절도 참 많은 사람을 만나 적지 않은 말을 쏟아내고 또 듣게 되겠지요. 혹시 어제 들은 말 가운데 오래 간직해 두고 싶었던 말이 있었나요? 거꾸로, 듣는 순간 귀를 막고 싶었던 말은 없었는지요? 오늘은 어떨까요? 역지사지. 어제 님의 한 마디 말이 상대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간혹, 상대를 위해 많은 말을 준비해 두고도 결국 한마디도 못할 때가 있죠? 했다고 해도 그 말을 상대가 어떻게 들었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말도 있구요.

요양원에 계신 울엄마는 귀가 잘 안 들리세요. 보청기를 해드렸는데, 어쩌다가 그마저도 어디론가 사라졌답니다. 가끔 영상통화를 할 때면 귀가 안 들리시는 데다 말귀마저 눈에 띄게 어두워져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다 보면, 말이란 게 참 무기력하고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다정한 표정으로 한마디만 하면 될 거 같아요. 사랑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고마워요 엄마! 한 마디라고 하더니만 세 마디나 되네요? 😘 무튼! 미숙둥절은 되도록 입을 다물고, 대신, 엄마가 하시는 말씀은 마디 마디 받아 얼음 눈송이로 만들어 엄마가 좋아하시는 빨강색으로 냉장고를 사서 거기 담아두고 싶네요. 나중에 아주아주 나중에 엄마 목소리가 그리울 때를 위해서.

님, 오늘도 님 일상을 함께하는 이들과

마음 속에 차곡차곡 담아,

두고두고 힘들 때마다 꺼내서 기운 받고 싶은 말들

많이 주고 받으시기 바라며!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