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요~기 위에 날짜 옆에 D-364, 눈치채셨나요? 숫자를 보면 D-day가 언제인지는 곰방 알아보실 테고, 그렇다면 1년 동안 미숙둥절은 뭘 바라고, 뭘 하면서 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걸까요 😆 님이 지금 받아보시는 레터, ‘미숙한이야기’의 ‘수명 연장의 꿈’을 결정하는 날입니다. 🤣 올봄 선물처럼 내게 다가온 친구의 은근한 권유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덜컥, 스티비 레터링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딩동^딩동^ 감동스러운 피드백도 적잖이 받았구요. (감사랑~해요!! 일일이 답글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여기 이렇게라도 💕) 그럴수록 맹숭맹숭 밋밋하기 짝이 없는 미숙둥절의 일상 가운데 무슨 얘기를 어떻게 보내드려야 미숙둥절과 님이 서로에게 마중물 같은 존재가 될까, 뒤늦은 고민이 깊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내린 결정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1년만 보내보자. 그리고 그때 나와 나의 이야기를 둘러보고 결정을 내리자!’ 랍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미숙한이야기’부터 D-day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미숙둥절과 미숙한이야기의 우당탕탕 성장 일기를 너그러운 눈빛, 솜사탕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길~!!

흐렸다가 맑았다가 변덕이 심했던 지난 주말에 습하기는 해도 바람이 많아 미숙둥절은 오랜만에 에어컨 없이 지난 영화들 보면서 ‘방글라데시’에서 지냈습니다. 5일장에 반바지 사러 간다는 동네 동생을 따라 나섰다가 덩달아 사왔던 5천원짜리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온 건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때마침 노랑색 맥심커피믹스가 간절했던 터라 커피가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습기 머금은 바람을 맞고 있노라니 달달구리 커피에 에이스나 초코칩쿠키를 찍어 먹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 간단한 것을 아파트 단지 내에 수퍼까지 내려가기가 귀찮아서 생각만 굴뚝 같았거든요. 커피, 바리스타는 절대 아니고 미숙둥절식으로 그때 그때 마십니다. 그런데 가끔 생각해요. 피곤하게 공부하다가 또는 일하다 각성을 위해 마시는 커피 대신, 맛과 향과 여유를 오롯이 즐기는 커피였으면 하고.  

같은 맥락으로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고맙기 짝이 없으나 순전히 미숙둥절의 까칠한 성깔 때문에 일상에서 빼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알람입니다.

알람이란 것이 그 목적에 충실한 이상, 제아무리 부드럽고 달콤한 선율로 상냥하게 울릴지언정 결코 반가울 수 없는 노릇. 자고 싶은 만큼 개운하게 잘 자고 알람 없이 일어나 느긋하게 맞이하는 아침. 그 작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소망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게 자발적 비정규직, 좋게 말해서 프리랜서로 살면서 얻는 소소한 행복감이죠. ㅎㅎ. 새벽 기상이 루틴으로 자리잡은 요즘, 기상 알람은 무늬만 알람일 뿐이고 대신 미숙둥절은 대낮 알람이 필요하답니다. 15분~20분 정도 자투리 낮잠을 자게 되거든요. 그렇게 알람은 아직도 제 일상 언저리를 맴돌아요. 그 대낮 알람 마저 빼고 싶네요.  

그렇지만 더하고 또 더하고, 절대 빼고 싶지 않은 건 위트.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빈정거리거나 깐죽대는 얄미운 유머 빼고, 말꼬리 잡고 트집 잡는 거 빼고, 언어유희를 위한 가벼운 말장난도 빼고.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 앞에서 환한 미소로 무심한 듯 툭 내던지는 유쾌한 농담 한마디. 자칫 심각하고 침울하게 흘러갈 분위기를 단박에 유쾌하게 전환시키는 유쾌한 말솜씨. 눈 앞의 현실과 삶의 진실을 관통하는 통찰력은 잃지 않되 절대 무게 잡지 않고 그 누구도 가볍게 무시하지 않는 동시에 훈훈한 진심이 전해지는 나무랄 데 없는 촌철살인. 지친 하루에 산소 같은 순간들이지요.  

건강함을 기원하라

그리고 그 생기에 둘러싸이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그리고 그 빛에 둘러싸이라

고귀함을 갈망하라

그리고 그 인연에 둘러싸이라

사랑, 사랑에 투신하라

그리고 그 신비에 둘러싸이라

속셈없이 구하여라

그리고 그 응답에 둘러싸이라

간절하게 구하여라

그리고 그 하나에 응답하여라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늘어선 가로수길, 비 오는 날 자판기 커피, 일하는 동안 잔잔히 흐르는 음악, 농담이 통하는 친구와의 유쾌한 수다······. 손꼽으니 언제나 나의 일상 한켠에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게 참 많네요. 아직도 청년의 기개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박노해님의 시, 아침에 혼자 읊조리며 읽다가 오늘 이야기에 덧붙여 님과 함께 읽고 싶었어요. 시인은 우리가 건강, 아름다움 그리고 고귀함을 구하기를 바라네요. 그것도 아무 계산도 하지 말고 간절하게 구하기를. 그리하여 생기와 빛과 인연과 신비에 둘러싸이기를.  

님은 님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요?

투쟁하다, 항쟁하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 Struggle. 학창시절 처음 볼 때부터 미숙둥절은 그 단어가 삶의 진실을 간파한 단어란 생각을 했었어요. 중간에 –gg- 스펠링이 어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몸부림치는 사람 같아 보였거든요. 발음도 뭔가 사납고 박박 우기는 듯했구요. 우리 대부분 안간힘, 버둥거림, 낑낑거림으로 하루를 버텨내지 않던가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모두 ‘투쟁’하잖아요.

은근히 짜장면 강요하는 점심 식사 자리에서 짬뽕! 외치는 것도, 다들 맛있다고 줄 서는 맛집에 들어갔다가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도, 모두 <범죄도시2> 본다고 우르르 몰려 가는 일행을 뒤로 하고 혼자 조용히 남들 잠 온다고 싫어하는 독립영화 없는지 훑어보다 결국 카페에서 일행을 기다리기로 선택하거나, 유명 작가의 뜻 모를 책을 과감히 제쳐두고 무명 작가지만 내가 끌리는 책을 선뜻 집어 들고 서점을 나서는 것도, 좋은 것을 좋다고 싫은 것을 싫다고 하는 것도, 좋았었지만 이젠 싫다고 싫어했지만 이젠 좋아한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투쟁이 아닌 순간이 없어요. 창호지만큼 얇은 경계 안쪽으로 살포시 들여 놓기도, 경계 너머로 살짝이 내어놓기도.

오늘 님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고 싶으세요?

그게 무엇이든 미련은 두지 마세요.

님 것이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 다시 들여놓아요, 지금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반갑게.

이만 총총